특전사령관·방위사령관 계엄전모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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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령관·방위사령관 계엄전모 폭로

비상계엄선포와 관련한 내란혐의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윤석열대통령이 작전중인 육군 특수전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병력움직임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김용현전국방부장관은 계엄발표전 상황파악이 안 된 이들 현장지휘관에게 대기를 명령하고, 계엄사령부가 구성되기도 전 군투입을 지시하는 등 실제행동을 총지시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속전속결로 장악하려 했던 시도로, 이는 철저히 윤대통령과 휘하 극소수인사가 각본·연출·주연을 모두 맡는 형태로 진행됐다는 의미다.

관련자들의 국회증언과 언론인터뷰 등을 토대로 당시 지시하달 및 이행과정 등을 재구성한 결과 해당 극비작전은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인물들이 포고령발효전부터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무시한 채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법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김전장관은 계엄사령관을 건너뛰고 직접 지시했다.

곽종근특전사령관, 이진우수도방위사령관은 대통령의 비상계엄발표전 김전장관으로부터 대기명령을 받았고, 계엄이 선포된 이후에도 김전장관의 지시가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까지 나서 병력이동을 직접 챙겼다고 밝혔다. 계엄법상 정식 명령권자인 계엄사령관을 건너뛴 것으로, 군투입 관련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수 있다.

곽사령관은 6일 김병주민주당의원의 유튜브채널에 출연해 비상계엄령이 보도되기 20분전에 장관이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비상계엄은 언론보도를 보면서 최초로 인지했다고 말했다.

계엄령선포이후에도 김전장관의 지시는 계속됐다.

곽사령관은 국회의사당 시설확보 및 인원통제, 선거관리위원회 시설확보 및 외곽경비, <여론조사 꽃> 시설확보 및 경계 등의 임무를 장관에게 전화로 받았다고 말했다. 또 김전장관이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는 지시까지 내렸지만 위법성이 명백해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채널에 출연한 이사령관도 계엄발표 10분전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상황이 위중하니 집무실에서 대기하라>는 장관 전화가 있었다, 계엄령선포후에는 국회로 가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 계엄사령관과 통화는 1번이었다며 장관과는 여러차례 통화했다고 언급했다.

곽사령관과 이사령관은 모두 작전중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고도 털어놨다.

곽사령관은 707(특임단)이 이동할 때 <어디쯤 이동하고 있느냐>(는 전화를) 1번 받았다, 작전 중간, 국회 도착하기 전쯤인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사령관 역시 대통령으로부터 1차례 전화가 왔다, <거기(국회) 상황이 어떤가?>라고 물어 <굉장히 복잡하고 인원들이 이동하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당시 작전은 계엄명령체계는 물론 계엄군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던 것으로 보인다. 707특수임무단의 국회투입이 이를 뒷받침한다. 곽사령관에 따르면 해당 부대가 국회에 진입한 이유는 야간훈련을 대비하고 있어 인원이 소집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707특임단은 원래 대테러작전에 특화된 인력이다.

이는 어떤 특수부대가 됐든 일단 빨리 투입, 속도전을 통해 계엄해제를 의결할수 있는 국회를 먼저 장악하기만 하면 된다는 군수뇌부의 인식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곽사령관은 707특임단은 헬기를 타고 국회에 강하했는데, 헬기준비 등에만 50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곽사령관은 국회·선관위·여론조사꽃 시설확보 및 경계임무를 지시받았다며 국회 말고는 가지 않던 곳이기 때문에 선발대부터 보냈다고 전했다. 위치조차 몰랐다는 취지로, 통상적 작전대상이 아닌 시설에 진입을 명령한 데다 작전시행을 위한 기초적 사전조사도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다.

선관위에 대한 병력투입과정에선 군내 충암파로 분류되는 여인형방첩사령관의 역할이 도드라졌다.

윤대통령이 3일 22시23분 계엄담화를 발표했고, 여사령관은 22시30분 조지호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청장은 국회에서 여사령관이 <우리가 선관위쪽에 간다. 경찰하고 합동수사본부를 꾸려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으니 수사관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여사령관은 조청장에게 정치인 등 주요인사의 위치확인을 요청했다. 다만 경찰청은 조청장이 주요인사의 위치확인은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계엄군 10명이 처음 선관위에 도착한 시간은 22시33분이었다. 경찰에 대한 협조요청과 군투입이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것이다.

특히 가짜뉴스, 여론조작 등을 금지한 포고령1호가 발효한 건 23시부였고, 발표는 23시23분에 이뤄졌다. 박안수육군참모총장은 국회에서 자신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사실을 윤대통령의 계엄선포이후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계엄업무의 근거가 되는 계엄사령부가 제대로 구성되기 전, 포고령이 발효되기도 전에 군이 먼저 선관위에 투입된 것이다.

극소수를 중심으로 한 사전모의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윤대통령과 같은 충암고출신 이상민행정안전부장관의 행보에서다. 이장관은 민주당이 제기한 올해 초 방첩사 <충암파4인비밀회동> 멤버로도 꼽힌다.

행정안전부가 이상식민주당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장관은 3일 18시쯤 김전장관의 전화를 30초간 수신했다. 김전장관이 대통령실에 들어가 윤대통령을 만난 시간과도 일치한다. 윤대통령과 계엄령을 논의하다가 이장관에게 전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이장관은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계엄령 관련 국무회의 등을 위해 대통령실로 급한 호출이 이뤄졌을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김전장관이 당시 전화에서 이장관에게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했고, 이장관이 계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후였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군내부에선 극소수 충암파의 계엄논의가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 등 <김용현충성파>로 곧바로 하달됐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서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여사령관조차 언론인터뷰에서 <TV로 실시간으로 계엄선포 상황을 지켜봤다. 엄청 놀랐다>며 사실상 김전장관에 책임을 돌렸다.

2024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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